읽고 싶은 책을 선택하는 방법의 대부분은 작가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하나하나 읽어가며 작가의 정신세계(?)를 알아가는 것을 즐기는 편인데, 존 그린은 꽤 유명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내 독서 편식의 범위 안에는 들어와 있지 않았다.
영화 소식을 듣기 전- 아마 영화 개봉 전이었을지도 모른다 -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베스트셀러 1위와 유럽,미국 청소년들의 베스트셀러를 비교하는 뉴스를 보았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대부분 자기계발서나 수험용 책인 반면 유럽,미국 청소년들의 베스트셀러는 대부분 문학작품이었고 1위는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라는 책이었다.
응? 어떤 책이길래 청소년들이 이렇게 좋아하는걸까? 궁금해졌다.
작가나 스토리에 대한 내용, 영화 등등 전혀 모른 채 그 궁금증 하나로 서점에 가서 이 책을 들고 왔다.
베르나라의 제3인류를 읽던 중이었기 때문에 한 달여 책꽂이에서 쓸쓸히 나를 기다렸던 책이 제3인류의 5권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에 들리게 된 것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주제이지만,
이 작가는 산다는 것, 죽는다는 것이 큰 의미를 부여해야하는 것이고 철학적으로 또는 아름답게 로맨틱하게 그려져야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가는 것 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때로는 익숙해서 재미없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내용은 암에 걸린 소녀와 소년의 이야기다.
암을 이겨내는 내용이 아니라 암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해야할까? 암을 이겨내기 위한 기승전결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암 환자의 삶의 이야기이다. 마치 고혈압 환자가 처음 발병했을 땐 큰 두려움을 느끼다가 약물치료를 받으며 어느새 이런 것들에 익숙해져서 그렇게 약을 먹으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같지 않을까?
"넌 그냥 암에 걸렸을 뿐이야."
10대들의 언어를 우리나라 식으로 번역한 것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 아이들의 행동을 따라가며 한참 낄낄거리면서 읽었다.
사춘기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랄까? 마음껏 자유분방함을 표출하는 삐탁한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기도하고 때로는 한 대 때려주고 싶기도할만큼 동정심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작가가 서문에 이건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라 허구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헤이즐이 말하는 것처럼 정말 우린 같은 무게감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삶의 무게를 모두 같게 느낄 필요는 없지만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 단지 암에 걸렸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 익숙해진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게된다. 하지만 분명 툴툴거릴 헤이즐이 생각나 당당하게 안타깝다 말하지 못하겠다.
[영화-안녕, 헤이즐]
책만으로도 충분했다. 굳이 영화를 보고 감동을 곱씹을 생각이 아니었는데, 천진난만한 두 배우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혀(?) 결국 영화를 보고말았다. 그리고 땅을 치며 후회를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책을 다시 읽어서 리셋을 시킬까..
영화가 이상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두 배우는 감독이 원하는 대로 영화를 잘 이끌어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쉬던 그 10대의 통통튀는 매력은 많이 사라지고 암으로 아프고 슬픈 아이들의 이야기로 가득찬 것 같은 느낌이 가득했다. 내게는.. 그래서 실망했다. 영화라서 어쩔 수 없었을까?
책을 읽었을 땐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라는 제목이 주는 의미가 나름대로 잘 다가왔는데 영화에서는 '안녕, 헤이즐'만 남는 느낌이었다.
코맥맥카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경우 책을 읽었을 때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영화를 본 다음에야 조금 정리되는 느낌이었고,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같은 경우는 영화에서 CG로 표현되는 것들이 그 맛을 더 잘살려주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반대가 되버렸다.(내게는)
잔잔한 이야기라서 그럴까? 굳이 영화를 통해 눈으로 확인해야할만한 특별한 무언가가 없어서 책보다 실망스러운지도 모르겠다.
가장 바쁜 10월 베르나르의 제3인류 네 권과 히가시노 케이고의 학생가 살인사건, 그리고 이 책까지 6권의 책을 읽었다. 무지하게 다독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별 것 아니겠지만 일에 파뭍혀 힘든 시간들을 책이라는 돌파구를 가지고 잘 뚫어갔다는 생각에 스스로 칭찬을 좀 해주었다. 자! 다음은 움베르트 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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