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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Morning/시,에세이

[허수경]시_ 허수경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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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선

 

2021_3

 

 

허수경 시인의 시를 모아

영문 번역과 함께 실어놓은 책이에요.

 

허수경 시인의 시를

여러 편 읽어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꽤 깊게 빠져버렸어요.

 

시인은

결이 참 곱고 선하고 아름답지만

그만큼 서글프고

외로운 분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머리칼은 젖어서

감기가 든 영혼은 자주 콜록거렸다.'

   

돌이킬 수 없었다란 시의 

한 부분이에요.

이 시를 읽다가

이 표현에서 벗어나질 못하겠더라고요.

 

시인이 어떤 생각으로

이 시구를 썼는지 알 수 없지만

 

어딘가 있었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심연의 슬픔이 

갑자기 수면 위로 튀어 올라온 것같이

뭐라 설명하기 힘든 마음이

마구 마구 흔들리더군요.

 

책 앞 뒤에 실린 추천사나 해설을

그리 즐겨 읽진 않아요.

하지만 이 시집에 실린

김수이 평론가님의 해설은

너무 감명깊었어요.

 

- 허수경의 시는 상처와 울음으로 빚은

사랑의 세레나데다.

 

- 허수경의 시는 상처와 울음의 

한국적인 고고학이자 음악이며 미학이다. 

그러나 허수경은 과거에 매료된 시인이 아니라,

현재가 지닌 오래된 것의 깊이를

살아내는 시인이다.

 

시도 아름답고

해설조차 아름다운 시 같았던

마음에 깊이 남는 시선이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었다.

 

- 허수경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치욕스럽다, 할 것까지는 아니었으나

쉽게 잊힐 일도 아니었다

 

흐느끼면서

혼자 떠나 버린 나의 가방은

돌아오지 않았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머리칼은 젖어서

감기가 든 영혼은 자주 콜록거렸다

 

누런 아기를 손마디에 달고 흔들거리던 은행나무가 물었다, 나, 때문인가요?

첼로의 아픈 손가락을 쓸어주던 바람이 물었다, 나, 때문인가요?

무대 뒤편에서 조용히 의상을 갈아입던 중년 가수가 물었다, 나 때문인가요?

 

누구 때문도 아니었다

말 못 할 일이었으므로

고개를 흔들며 그들을 보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터미널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가방을 기다렸다

 

술냄새가 나는 오래된 날씨를 누군가

매일매일 택배로 보내왔다

 

마침내 터미널에서

불가능과 비슷한 온도를 가진

우동 국물을 넘겼다

 

가방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 예감은 참, 무참히 돌이킬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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